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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5

story / 2011/06/15 13:28
음......
무슨소리지.....
.........전화다!
휴.....간신히 새벽에 잠들었는데.
정신이 점점 또렷해져서 벨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의 지정 벨로리.
새벽.
순식간에 잠이 깨고, 전화기를 잡은 손이 떨렸다.

"여보세요? 무슨일 있어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
뚜뚜뚜-

한마디도 정확히 들을 수 없었고, 그의 숨소리만이 거칠게 울렸다.
황급히 코트를 걸치고 집밖으로 뛰쳐나와 택시를 집어탔다. 이럴때는 헐렁한 티셔츠에 츄리닝바지를 입고 자는것이 잠옷보다 낫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가 이렇게 늦은 밤에 전화를 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무슨일 일까? 아픈게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아프지 않고는 이렇게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고급 빌라들이 즐비한 적막한 동네에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택시가 섰다. 뒷좌석에서 빨리, 빨리를 외쳐댔으니.

3동, 103호, 비밀번호 0503
심장은 미친듯이 쿵쾅거리며 날뛰었지만 이제 손끝은 떨리지 않았다. 
정신차리자...정신차려야되!
끝없이 주문을 걸었다. 그의 방까지 도대체 몇개의 문을 지났는지.. 
쿵쾅쿵쾅. 다급한 발소리를 노크로 대신하고, 벌컥 문을 열어 젖혔다.

"..........!!!!"
불필요한 소리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창백해진 그와 그의 담당의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상태를 듣고 싶어하는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은 것일까? 담당의사이자 대학동기인, 그의 이웃사촌이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은 헐렁한 운동복 바지에 채구보다 커보이는 구겨진 티셔츠를 걸쳐입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는 것을 보니 그도 정신없이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 분명하다.

"조금...심각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어울리지 않는 농담을 섞어가며 그가 괜찮다는 '의사'로써의 소견을 말했다.
"어지간히 아팠나보네요...연락한거보면. 이렇게 유능한 의사를 두고 무슨 걱정을 하는거야? 자식.."
마치 이 방안에 없는듯, 숨소리도 미약한 친구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말투는 오히려 단호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때 부터 숨기는 것이 없었다. 너무 솔직해서 나를 떼어내려고 거짓말을 하는건 아닐까..잠깐 혼란스러웠을 정도로. 그의 비밀 아닌 비밀을 듣고 나서부터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이끌어온 그의...뭐랄까.. 흔들림 없는 눈빛때문에 클립톤운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슈퍼맨이 라는 사실을 잊곤한다. 

"나..왔어요"
그의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끝이 따스하다.
그의 이웃사촌은 고개를 끄덕, 하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의사의 허락을 받고, 침대 한켠에 자리를 잡고 누워버렸다.
당연히 그를 혼자 둘 수 없었고, 나도 혼자 둘 수 없었다.
그의 베개 한켠에 얼굴을 묻고 속닥속닥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언젠가.. 어떤 영화를 보면서 말한적이 있다. 깊은 새벽, 눈을 뜬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적막속에서 잠이 깨면 죽음을 느낄 수 있다고.

"슈퍼맨아저씨. 당신이 슈퍼맨이라는거 비밀로 해줄께요. 그리고 클립톤운석이 당신 약점이라는 사실도 나만 알고 있을꺼야. 그러니까 내 말 잘들어야되는거 알죠?? 응??"
감겨있는 그의 눈을 보며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를 하고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밀고 당기기는 연애의 기본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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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iiihye

미친척 하고-4

story / 2011/02/21 20:49
이마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뭐지... 더 깊이 잠들어 버릴것처럼 포근하지만 눈을 뜨고 실체를 확인하고 싶을 만큼 달콤하다. 온기가 차츰 사라지면서 눈앞이 선명해 졌다. 어느새 잠들어 버린건지....
그는 어두운 사무실, 모니터의 불빛을 받으며 생각에 깊이 빠져 있다. 가벼운 느낌의 뿔태안경을 낀 그도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하며 소파에 그대로 널부러져 있다. 옷도 다 구겨지고, 화장도 갑갑하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잖아..

"언제까지 멍하게 있을꺼야? 뭐 좀 먹어야지"
"음...그냥.. 조금만 더... 일 계속 해요."
"언제 끝날지 몰라, 계속 지켜봐야 하거든."
"낮에는 코스닥, 밤에는 나스닥..잠은 언제자요? 그렇게 안자면 죽어요"
실실- 웃음이 나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도 따라서 조용히 웃었다.
"내가 빨리 죽는게 그렇게 좋아? 그런데, 코스닥, 나스닥은 또 어디서 들었어? 이런거 관심 없잖아."
"애인이 하는 일인데 기본은 알아아죠! 날 뭘로보고!"
슬쩍 눈을 흘겼다. 그는 또 피식 웃으며,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항상, 뷰러로 한껏 집어올린 속눈썹에 짙은 마스카라를 바르고 있는 듯 어딘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아침에 한 화장이 번들거려서 지저분해 보이지는 않는지 불안했다. 오늘 입은 옷이 구두와 어울리지 않는건 아닌지 신경쓰였다. 연애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다르다. 그의 눈은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머리도, 옷도, 신발도, 가방도, 귀고리도 아닌 내 눈을. 난 내 마음만 그에게 잘 보이면 그뿐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그와 함께 있을 때의 편안함이, 시간이 갈 수록 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때로는 내가 너무 편안하게 그를 대하는게 아닌가..하고 걱정도 되지만.
어쩌면, 그가 항상 '완벽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대에서 오는 불안감 일 수도 있다.

갑자기 그가 바쁘게 주변을 정리하고, 상쾌하게 빛나는 파란색 넥타이와 어울리는 짙은 그레이 수트를 걸쳤다. 얼마나 꼿꼿하게 앉아 있었으면 셔츠에 주름도 없는거야!

"안되겠다. 나가자. 저녁 너무 늦게 먹으면 잠잘때 불편해"
"아- 귀찮아.. 시켜먹을까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지만, 결과는 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식당가서. 지금 예약할께. 번호가...."

그리고는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나름 애교있게 말한건데...대답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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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iiihye

미친척 하고-3

story / 2011/02/03 01:57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얼마나 상대방을 생각하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지는 난 잘 모르겠다.
하루에 몇번이나 전화하는지?
우리의 통화는... 예, 아니오의 짧은 문답을 통화라고 쳐준다고 해도
지극히 효율적이다.
사랑한다는 말?
우리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우린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걸까?

난 항상 그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가끔 생각을 하지 않을때면 일을 한다. 굳이 말을 하자면 그렇다.
그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다.

우린 아침, 점심, 저녁 정확히 세번 통화를 한다.
밥은 잘 먹었는지, 아픈곳은 없는지. 늘 똑같다.
퇴근 무렵 통화에서는 어디서 몇시에 만날지 확인한다. 그래봤자 간신히 1분을 채우지만.

야근을 하지 않는 이상 만나서 함께 퇴근 하기로 했다.
겨울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의 손을 잡아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고요함이 적어도 나는 편안하다.

-어디 아픈데 없는지 물어봐줄래요?

걸음을 늦추고, 그는 내게 '정해진 일과' 마냥 안부를 물었다.

-밥은 잘 먹었어요?
-잘 먹었어요.
-어디 아프지는 않아요?
-아픈곳 없어요.
-혹시 다치지는 않았어요?
-걱정끼치기 싫어서..안다치려고 조심해요. 매일매일.

그리고 그의 눈을 빤히 올려다 본다.
언제나 처럼 일과를 묻고나서,
키스를 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매일 이렇게 떨리고 설레이는 '일상'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랑의 실체를 내 눈앞에 보여야 그렇다고 인정할 것이다.
사랑이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따위의 것이라면, 우린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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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2

story / 2011/01/10 12:03

무슨 말을 해야할까.
전화번호를 물어야하나? 내 소개를 먼저 할까?
아..모르겠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구나..'
멍하니 서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때, 그가 나에게 잡혀있는 팔을 살짝 흔들었다.

순간 망상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맞이했다.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한 인상과 특별히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단정한 이목구비.
내가 보는 눈은 있군.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입술이 저절로 열렸다.

-손이 차요.. 손이 차면 몸에 않좋은데.
그리고 그의 손의 잡아 꼬옥 잡았다.
-그럼 계속 이렇게 잡아주면 되잖아요. 아까보다는 따뜻해졌어..
-그 대신 내손은 차가워 졌어요..
-...그럼 내가 다시 손...잡아 줄께요. 다시 따뜻해지게. 그래서 내 손이 다시 차가워지면, 또 내손 잡아줘요.

너무나 편안했다. 그래서 이 바보같은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랬다.
내가 그를 집까지 바래다 줄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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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1

story / 2011/01/09 21:07
차라리 자는 편이 나았다.
퇴근시간 만원 버스에서 졸면서 앉아가는 행운이라..
끼-익.
어느 정류장에 버스가 투박하게 멈추어선다. 졸린 눈을 반쯤 뜨고 문가를 더듬거렸다.
코트의 깃을 바짝 세우고, 검붉은 적색 머플러를 두른 그가 한 손에 브리프케이스를 꼭 쥐고 올라섰다.
내 앞으로 올까?
문득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추운지 자유로운 한 손을 말아 쥐고서는, 호- 하고 입김을 불어넣는다.
'손..잡아주고 싶다..'
얼굴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차마 대놓고 얼굴을 올려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두운 창밖에 비추인 그의 실루엣을 힐끔 보며 내 자신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10분.. 
그가 언제 내릴지..신경이 쓰여서 잠은 이미 달아난지 오래다.
따라서 내릴 용기도, 더구나 말을 걸어 볼 용기도 없으면서.

그가 주섬주섬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을 찾는 것을 보니 내릴 정류장이 가까웠나보다.

끼-익. 철커덕.

난, 그냥 그렇게.. 얼마동안.. 서있었다.
그는,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내가 잡고 있는 소매 쪽으로 반쯤 몸을 돌려 어색하게 서있다.
이남자 귀엽다..
막상 그를 돌려 세워놓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부끄럽거나 뭐 그러지는 않았다.

미친척 하고서 -내 평생에 이런 일은 다시는 없다는 생각으로-
추워서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하고선
웃었다.
소매 끝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기분 좋게 내 손끝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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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iiihye

미안

story / 2011/01/08 20:45
왜 좋았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그를 많이 좋아했다.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했었던.. 말도 안돼는 일 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대도 그는 전혀 몰랐다.

어느날 그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너무 놀라고, 기뻤다. 누구는 교수님께 잘 보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지만,
나는 그가 나의 점수를 알게 될까봐 예습까지 하며 열심히 했다. 누가 알아 준다고!!

"저기..혹시 저번 시간 수업했던 내용 필기했어? 내가 결석을 해서.."
오.마.이.갓
결국은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말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또 술먹느라 늦게 잖어? 으이구.. 곱게 보고, 곱게 돌려줘라."
"예예~ 잘~알겠습니다~"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키득거리며 자신의 친구들 무리로 돌아갔다.

별일 아닌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왜 하필이면 나에게 빌려달라고 했을까..혹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다 밤을 지새기도 했었지..바보아니야!!
하지만 그를 좋아하면서도, 
몇명의 남자를 사귀었고 -인생은 그런것- 항상 목에 가시처럼 그가 걸리곤 했다.

졸업을 하고 그의 소식을 드문드문 들으면서 그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했지만 여전히 그가 그리웠다.
꼭 무슨..헤어진 남자친구처럼..

다리에 쪽지를 매달고 운반하던 새 마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던 친구가
그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여자가 모델인가? 뭐 그런거 한데~ 그런 여자 만날 줄 알았다니까~호호"
젠장. 예쁘겠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그의 결혼에 대해 조잘거리는 친구의 입을 막았다.

"그자식 얘기 그만하자. 내 스타일도 아니고, 관심도 없거든!"
"쳇. 니 스타일은 나도 알거든!! 그냥..수현이가 너 좋아했었잖아~ 내가 말 안했나??"

저기집애..눈을 똥그랗게 뜨고 순진하게 묻는는다.
그래 안했다. 분명히!!!

"뭐?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담담한척 약간은 기분나쁜척 되물었다.

"학교다닐 때 수현이가 나한테 니 전화번호를 물어보더라? 나보고 가장 친한 친구 아니냐면서.
전화받았다는 얘기 없길래, 그냥 연락하려다가 말았나 했어"
"전화..안왔었는데.."
"너도 별로 관심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얘기 안했나봐. 뭐 옛날일인데~"

돌이켜 보면.. 그가 계속 내 머리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떠나지 않는 것은,
내가 그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는 후회 때문 일 것이다.
그의 운명은 모델과 결혼하는 건가?
운명을 돌리고 나의 책임은 회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잊기에는
내 기억 속에 그와 함께 만들 수도 있었던 추억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고,
또 아쉽다.

두근거림을 외면했던 22살의 나에게..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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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똑딱

story / 2010/11/16 01:34

한번도 울지 않았다.

다시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누구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위로 받을 일도 없다고..그러면 이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시끌벅적한 회식이 끝나고
생기넘치는 발그래한 볼을 한 그녀는 끝까지 웃으며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몰래 들어오려던 계획이 실패하고 엄마에게 들은 싫은 소리 몇마디를 '네' 한마디로 가볍게
넘기며 방문을 닫았다.

똑딱똑딱

똑딱똑딱

유난히 큰 시계소리를 들으며,
"시계...바꿔야겠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아니 인식하지 못했던 저 소리가 계속 머리속을 울렸다.

잠들때 까지 그 소리는 계속 떠나지 않았다.

잠을 설친 그녀는 개운하지 못한 아침의 이유를 떠올리다가 다시 귓가에서 커지는 시계소리에..멍해졌다.
마른 눈에 이제야 눈물이 스몄다.

동료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오늘 땡땡이. 공식적으로는 병가.

미뤄왔던 '울기'를 오늘 끝내버려야겠다. 내일 그를 만나면, 어제와 같은 내 모습을...

똑딱똑딱

그 소리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불규칙하게 이불 끝이 들썩,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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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iiihye

엄지 발가락

story / 2010/11/15 02:32
두 사람은 하얀 시트로 되어있는 넓다랗고 푹신한 배게를 하나씩 배고서, 이불은 가슴끝까지 덮고 똑같이 손가락을 깍지껴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두툼한 시트는 앞뒤로 그리고 좌우로 까딱거리는 그녀의 발쪽만 제외하고는 주름하나 없다.
편안하고도 표정 없는 얼굴로 영화에 몰두해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의 옆모습에 대고 여자가 물었다.
"저 남자 주인공처럼 발에 키스하는거 어때?"
정확하게는...발가락, 여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어때? 말해봐"

"......뭐가"

여자는 되묻는다.
"다른사람 발인데 더럽다는 생각안드나..해서. 난 좀.. 그래. 그치?"
......
대답하는데 왜 저렇게 오래걸리는 건지, 여자는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한참 후 그는 들릴듯 말듯 낮은 목소리로 '뭐?' 하고 만다.
영화에 빠져 있어서 그런건지 뭔지, 암튼 고개는 정면에 고정해서 흐트러 질줄 모른다.
.......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뭘 저렇게 심각해, 라고 여자는 생각하며 
괜히 소리내어 피식 웃는다.

엔딩 크래딧..
그녀의 발끝 솟아있던 시트가 계속 사각거린다.
그녀는 TV를 꺼서 그런지 유난히 크게 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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